삼성전자 성과급, 진짜 이슈는 따로 있다.
관리회계와 협상론으로 삼성전자 성과급 이슈의 숨은 쟁점들을 분석합니다.

1. 서론: 일상으로 다가온 삼성전자 노사 갈등
삼성전자 노사의 성과급 잠정합의안이 총파업을 불과 한 시간여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됐다고 합니다. 삼성전자에게도 노동자에게도 그리고 한국 경제 전체에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 결정이었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와 노조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성과급 관련 이슈를 앞으로도 반복해서 접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내용의 협상을 체결하자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이슈를 정치적 관점이나 개인적 가치관보다는 ‘관리회계(Management Accounting)’와 ‘협상론(Negotiation Theory)’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해보려고 합니다.
2. 본론 I: 관리회계 관점에서 본 3가지 핵심 쟁점
관리회계 측면에서 볼 때, 하나의 회사가 제대로 굴러가기 위해서는 세 가지 핵심 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합니다. 바로 의사결정 권한의 배분, 성과 측정, 그리고 보상입니다. 이번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이 세 가지 축 모두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축인 ‘의사결정 권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2-1. 의사결정 권한(Decision Rights)의 모호성: 어디까지가 경영권이고, 노사협의 대상인가?
가장 먼저 부딪히는 난관은 바로 경영자의 의사결정 권한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점입니다. 최근 시행된 이른바 ‘노란봉투법’ 조항 해석에 애매한 부분들이 존재하다 보니, 어디까지가 경영권이고 어디서부터가 쟁의 대상인지 그 구분 자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분분한 상황입니다.
그 구체적인 원인은 노동조합법(제2조 제5호)의 ‘노동쟁의’ 정의가 개정된 데 있습니다.
- 개정 전: 임금, 근로시간, 복지, 해고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상태를 의미했습니다.
- 개정 후: 기존 조항에 더해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이라는 문구가 노동쟁의 대상에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이 대목이 왜 중요할까요? 참고로 그동안 대법원은 정리해고나 사업조직의 통폐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과 같은 사업경영상의 결정은 “경영 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보아왔습니다. 구체적으로, “정리해고, 사업조직의 통폐 합 등 기업의 구조조정과 같은 사업경영상의 결정은 경영주 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근로 자들의 지위나 근로조건의 변경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고 하더라도 노동쟁의 및 쟁의행위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 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이유로 한 쟁의행위(가령 파업)은 불법적인 쟁의행위에 해당한다”는 취 지로 판시해 왔습니다.(대법원 2008. 10. 9. 선고 2006두12852 판결 등 다수)
그런데 노란봉투법이 쟁의 대상에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포함시키면서, 기존 대법원 판결의 법리가 변경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정리해고는 물론, 사업부문 통폐합이나 인사평가 제도 등이 회사의 각 해당 부서가 고유하게 갖는 의사결정 권한인지, 아니면 노동쟁의 및 쟁의행위 대상에 해당하는지 뚜렷하게 선을 긋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노란봉투법은 그 좋은 취지와는 별개로, 관리회계 측면에서 기업 구성의 핵심 축인 ‘의사결정 권한’을 모호하게 만들어 노사 간의 혼선과 갈등을 유발한 면이 있어 보입니다.
2-2. 성과는 어떻게 측정해야하나: 통제 가능성의 딜레마와 ‘영업이익 vs EVA’
두 번째 쟁점은 근로자의 성과를 ‘무엇으로,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1) ‘통제 가능성’의 한계와 상대평가의 필요성
우리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성과 평가의 원칙은 근로자가 ‘통제 가능한 것’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점수가 깎이면 억울하잖아요. 마찬가지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업황 등의 운에 의해 의해 성과가 좋게 나오면 운은 가급적 배제하고 내가 실제 기여한만큼 (통제한 만큼) 평가를 받아야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순수한 통제 가능성에 입각한 평가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의 상시적 개입: 현실에서 통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명확히 분리하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과거 적자를 기록할 때, 이는 근로자 문제도 있었겠지만, 근로자가 통제 할 수 없었던 요인, 경영상 실책, 업황 등의 근로자가 ‘통제할 수 없었던 요인’들도 있습니다. 반대로 요새 삼성전자가 요즘처럼 사상최고실적 낼 때도 마찬가지로 이는 근로자 노력 외에, 경영상 선견지명, AI 붐, 정부지원 등의 근로자가 노력이 아닌 외부 요인이 섞여 있습니다.
- 인지 편향: 사람은 인지 편향이 있어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통제 가능성을 다르게 인식합니다. 회사가 잘 되면 근로자는 “내 덕(통제 가능)”이라고 생각하고, 안 되면 “경영자나 업황 탓(통제 불가능)”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리자 역시 정반대로 인식하기 쉽습니다. 즉, 회사가 잘 되면 관리자는 ‘이건 경영 탓이다. 업황 탓이다.’라고 생각하고, 회사가 잘 안 되면, 이건 ‘요즘 근로자 업무 태도가 문제다. ‘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면 뭘 어떤 방법으로 근로자의 성과를 측정하란 말인가요? 정말 많이 쓰이는 방법 중 하나가 삼성전자가 노조에 제시한 대안이 바로 동종업계(SK하이닉스) 경쟁자와 비교하는 ‘상대평가’입니다. 시험 난이도라는 외부 운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상대평가로 학생의 진짜 실력을 평가하듯, 상대평가는 사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을 포함해 다양한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합리적인 방식입니다. 따라서 노조도 이를 거대 자본의 횡포로 보기보다는,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여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하기 위한 널리 쓰이는 방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성과평가를 위한 재무지표: 직관적인 ‘영업이익’인가, 합리적인 ‘EVA’인가?
성과측정에는 다양한 요소들을 반영하고 그 중 하나가 재무지표입니다. 현재 노조는 우리에게 익숙한 ‘영업이익’을 요구하는 반면, 사측은 다소 생소한 ‘EVA(경제적 부가가치)’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 영업이익의 직관성과 한계: 영업이익은 매출에서 영업비용을 뺀 직관적인 지표입니다. 하지만 단기 이익지표를 증가시키기 위해 미래 필수 투자를 미루는 식의 ‘게이밍(Gaming, 장난질)’이 쉽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큰 맹점은 대출 이자나 자본에 대한 기회비용 등 기업 운영에 필수적인 ‘자본비용’이 누락된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영업이익은 플러스(+)여서 성과급을 잔뜩 지급했는데, 막상 자본비용을 다 빼고 나면 회사는 적자(-)가 되어버리는 모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1000억 원이 투자된 부문과 10억 원이 투자된 부문을 단순 영업이익 수치만으로 동등하게 비교하기도 어렵습니다.
- EVA의 합리성과 복잡성: 반면 EVA는 영업이익에서 법인세와 모든 자본비용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남은 ‘진짜 순이익‘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또한, 단기이익 추구라는 게이밍 완화를 위해, 당장 R&D나 광고에 따른 비용 등을 여러기간에 걸처 나눠 처리합니다. 일각의 오해와 달리, EVA는 다 함께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회사가 망하면 다 같이 실직자 되는 것을 명심하세요!)인사이트를 제공하는 매우 합리적이고 학문적인 지표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있습니다. 산정 과정이 복잡하고, 회사마다 적용 방식이 달라 ‘투명성’이 문제 될 여지가 더 높습니다.
따라서 EVA가 제 기능을 하려면 노조와의 ‘투명한 공유’를 통한 신뢰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성과급 협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얼마를 줄 것인가’이므로, 사측 역시 노조가 복잡한 EVA 산정 방식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굳이 이 지표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2-3. 경영 재량권과 보상: 재량권과 주식보상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번 삼성전자 성과급 이슈에서 이견이 심했던 또 다른 핵심 부분은 바로 ‘성과급 제도화’와 ‘경영 재량권’의 대립입니다. 학문적 관점에서 볼 때, 재량권은 회사가 장기적으로 생존하고 다 같이 살아남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물론 근로자 입장에서는 성과급 산정에 경영진의 재량이 개입하는 것을 거대 자본의 일방적인 횡포로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학계에서 왜 경영재량권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는지 알아 볼고 그 취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경영 재량권은 왜 필요한가?
재량권이 필요한 이유는 세상에 완벽한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영과 관련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측정하여 사전에 규정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미래에 일어날 돌발 변수 역시 모두 예측할 수 없습니다. 관리회계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경영 재량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 내립니다. 물론 재량권은 줄 세우기, 자기가 좋아하거나 자기와 비슷한 사람에게만 잘 해주기와 같은 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재량권이 가진 단점은 여러 방법으로 완화할 수 있지만, 재량권이 없을 때 발생하는 ‘예측 불가능한 위기에 대한 대응력 부재’는 완화할 방법이 없으므로, 어느정도의 재량권은 필수 불가결한 회사운영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봅니다.
물론, “SK 하이닉스는 영업이익의 10%를 10년간 지급하기로 제도화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학계의 일반적 결론이나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예외적 사례로, 예외적 사건을 정답으로 여기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2)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재량권 활용 사례
실제로 최전선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은 성과급을 기계적인 공식으로 제도화하지 않고, 철저히 경영진의 ‘재량’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 TSMC (대만): SK하이닉스가 성과급 산정 협상타결 시, 벤치마크한 기업입니다. TSMC 성과급 지급방식은 영업이익 10% 수준으로 SK하이닉스와 유사해 보이지만, 결정적 차이는 TSMC는 매년 회사 재량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매년 이사회에서 당해 실적뿐만 아니라 향후 R&D 투자 예산과 장기 생산 능력 확보를 위한 자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성과급 총액을 ‘재량’으로 승인합니다.
- 애플 (Apple): 최근 AI 기술 경쟁으로 핵심 인재들이 오픈AI 등으로 이탈할 조짐이 보이자, 일부 핵심 엔지니어들에게 수억 원 상당의 주식(RSU)을 이례적으로 특별 지급했습니다.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유연한 ‘전략적 재량‘이 없었다면 이런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구글 (Google): 성과급을 일괄적인 파이 나누기가 아닌, 철저한 기여도(Impact) 평가에 기반해 운영합니다. 최상위 성과자에게는 파격적인 보상을 몰아주고 하위 성과자의 보상은 줄이는 등, 재량권을 조직 관리를 위한 강력한 ‘경영 도구’로 활용합니다.
결론적으로 글로벌 기업들은 불확실한 시장 상황과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 치열한 인재 확보전에 대응하기 위해 경영진의 재량권을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3) 성과급 제도화의 법적 리스크
또 하나 숨겨진 쟁점은 성과급을 제도화했을 때 회사에 가해지는 다른 형태의 부담입니다. 성과급이 일정한 산식에 따라 반복적·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제도로 굳어지면, 이것이 단순한 특별 보상이 아닌 근로의 대가인 ‘임금’으로 해석될 여지가 커집니다. 이는 향후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포함해야 하는지, 혹은 통상임금성이 인정되는지 등을 둘러싼 또 다른 법적 분쟁의 불씨가 될 수 있습니다.
4) 주식 보상의 숨겨진 기능
마지막으로 짚어볼 점은 보상의 ‘형태’, 특히 주식 보상입니다. 당장의 현금을 선호하는 일부 반발도 있지만, 주식 보상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강력하고 긍정적인 기능을 제공합니다.
- 이해관계의 일치 (Alignment of Interests): 주식 보상은 주주와 근로자들의 이해관계를 완벽히 일치시켜, 주주, 경영자 및 근로자가 한 마음으로 진심으로 장기적인 기업 가치를 제고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 인재 필터링 (Sorting Effect): 주식보상의 중요한 숨겨진 기능은 조직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으며 성과를 내는 사람들을 선별해 내는 것입니다. 긍정적 사람들은 주식이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경향이 강하고, 특히 “내가 노력하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나아가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다.” 이렇게 믿으며 성과도 더 좋다고 합니다. 반면,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사람들은 “나 하나 노력해봐야 뭘 할 수 있겠어?”, “이 회사 주식이 오르겠어?”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실제 성과도 떨어지며, 주식보다는 현금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회사는 주식 보상을 시행하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냉소적이고 성과 떨어지는 사람들을 걸러 낼 수 있고, 이게 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주식보상을 선택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3. 본론 II: 협상론 관점에서 본 노사의 전략
앞서 관리회계 관점에서 기업 내부의 시스템적인 어려움을 살펴보았다면, 이제 시선을 돌려 ‘협상론(Negotiation Theory)’의 렌즈로 이번 사태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전략 1. BATNA(대안)의 역학 관계: 노조와 사측은 각자 어떻게 협상력을 극대화했나?
협상론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입니다. 쉽게 말해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뜻합니다.
1) BATNA의 중요성
협상에서 흔히 말솜씨나 논리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협상력을 결정하는 더 근본적인 요소는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내가 버틸 수 있는 힘, 즉 강력한 BATNA입니다. 내 대안이 강력할수록 협상 테이블에서 여유를 가질 수 있고 상대방을 강하게 압박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안이 전혀 없다면 아무리 말이 그럴듯해도 결국 상대방의 조건에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협상 전문가들은 “협상의 결과는 협상 시작 전에 이미 정해진다”고 말합니다.
2) 노조의 BATNA
삼성전자 노조가 협상 결렬 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BATNA는 바로 ‘파업’입니다. 특히 최근 시행된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BATNA를 높여주는 제도적 변화로 작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노동쟁의 범위의 확대: 기존에는 임금이나 복지 등 직접적인 근로조건만 쟁의 대상이었으나, 새 법안은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쟁의 범위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노조는 보다 넓은 범위에서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 할 근거를 갖게 되었습니다.
- 손해배상 부담의 심리적 장벽 완화: 과거에는 파업이 불법으로 판단될 경우 조합원 개인에게 거액의 손해배상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는 두려움이 일반 조합원들의 파업 참여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은 손해배상 책임 판단 시 개별 근로자의 가담 정도를 고려하도록 하여 배상액 감면의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이로 인해 노조 입장에서는 “개인적 위험이 과거보다 제한될 수 있다”고 조합원들을 설득하기 쉬워졌고, 이는 파업 동력을 모으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3) 사측의 BATNA
반면 사측은 파업 기간 동안 노조가 잃는 일부 임금에 비해 막대한 생산 차질과 손실을 입어야 하므로 상대적으로 BATNA가 약해보였습니다. 이에 사측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고 BATNA를 높이려 노력했고, 운? 도 따랐습니다. 정부가 메세지를 낸 것이지요.
- 법원 가처분 신청: 회사는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고, 안전보호시설과 작업시설 손상방지 작업을 평상시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일부 인용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약했던 BATNA를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 정부의 긴급조정권 시사: 사측의 BATNA를 확실하게 끌어올려 준 결정적 요인은 사실 정부의 발표였습니다. 국무총리가 “파업 시 긴급조정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시사하면서, 파업이라는 노조의 강력한 압박에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사태를 보면, 진정한 협상은 테이블에서의 현란한 기교보다, 테이블 밖에서 조용히 각자의 BATNA를 강력하게 구축하는 작업이 훨씬 더 중요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략 2. 파이를 나누기 전에 파이를 키우자: 포지션(Position)과 이해관계(Interest)의 분리
협상론에서 강조하는 또 다른 핵심 원칙은 “입장(Position)과 이해관계(Interest)를 분리하라”는 것입니다.
1) 포지션(Position): 겉으로 드러난 요구와 치킨게임의 함정
협상에서 포지션이란 테이블 위로 명확하게 드러난 대외적 요구사항입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노조가 주장했었던 ‘영업이익 15% 지급 명문화’ 같은 것이었죠.
포지션은 숫자로 표현되거나 구호로 만들기 쉬워 힘 있게 주장하기 좋습니다. 하지만 양측이 이 포지션에만 집착하게 되면, 협상은 15%냐 10%냐, 혹은 영업이익이냐 EVA냐를 두고 서로 양보를 강요하는 ‘파이 나누기식 치킨게임’이 되어버립니다.
2) 이해관계(Interest): 요구 뒤에 숨겨진 진짜 속마음
반면 좋은 협상은 포지션이라는 겉포장 뒤에 깔린 진짜 원하는 바, 즉 ‘이해관계(Interest)’에 집중하여 의외의 상생 해법을 찾으려 노력합니다.
- 노조의 숨은 이해관계: 영업이익 15%라는 요구 기저에는 단순히 돈을 더 달라는 것 이상의 관심사가 있습니다. 회사가 큰 이익을 냈을 때 자신의 기여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거나 매년 성과급이 자의적으로 결정된다는 불안감을 줄여 안정적인 장기 소득을 원하거나 궁극적으로 회사가 노동자를 단순 비용이 아닌 ‘파트너’로 대우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동종업계 경쟁사(SK하이닉스)와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을 피하고 싶은 심리도 작용할 수 있습니다.
- 사측의 숨은 이해관계: 회사가 제도화에 신중한 이유도 단순히 돈을 아끼고 싶어서만은 아닙니다. 극심한 반도체 경기 변동성에 대비하고, 미래 생존을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비를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성과급이 고정적인 제도로 굳어질 경우 향후 임금성 인정에 따른 평균임금 및 통상임금 분쟁과 장기 인건비 부담으로 이어질 위험성까지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3) 파이 키우기
협상이 진정으로 타결되려면 양측 모두 테이블 아래에 숨겨둔 ‘불순한 의도’가 없는지 스스로 냉정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만약 노조의 속내가 정당한 룰 세팅이 아니라 ‘AI 특수라는 슈퍼사이클에 편승해 한 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단기적 독식에 있다면 협상은 겉돌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측의 속내가 글로벌 스탠더드나 성과주의를 핑계로 ‘직원들을 그저 값싸게 부려먹겠다’는 권위주의적 발상에 있다면, 직원들의 동기부여는 완전히 무너질 것입니다. 결국 양측이 서로의 이런 불순한 속내를 의심하며 방어막을 치고 있기 때문에 협상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상대방의 관심사 (Interest)를 파악하여 어떻게하면 상대방과 나의 파이를 최대한 키울 수 있지 찾으려고 노력하며 창의적 대안들을 지속적으로 생각해야합니다. 이 과정에서 투명한 근거를 통해 신뢰를 구축해야합니다.
4. 결론: 요약 및 마무리, 파이를 키우는 진정한 협상을 향해
지금까지 뜨거운 감자인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 이슈를 관리회계와 협상론이라는 두 가지 전문적인 관점에서 짚어보았습니다.
삼성전자 노사 갈등은 의사결정 권한의 배분, 성과 측정, 보상이라는 관리회계의 세 가지 핵심 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함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어느 한 축이라도 삐걱거리거나 서로 간의 투명한 공유와 신뢰가 부족하면 갈등이 발생하고 조직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팽팽한 협상을 타결하기 위해서는 각자의 강력한 대안(BATNA)을 바탕으로, 겉포장된 명분 뒤에 숨은 진짜 이해관계를 확인하여 파이를 함께 키우는 진정한 협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서로의 약점을 찌르고 이겨야 하는 치킨게임이 아니라,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위해 상생의 길과 창의적인 대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이 사태를 거울삼아, 평생 크고 작은 협상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나만의 협상력을 기를 수 있을지 되짚어보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